카테고리 없음 / / 2022. 10. 5. 19:31

밀양 영화, 하나님 용서는 누가 하나요?

반응형

배우 전도연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게 해준 밀양입니다.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아들과 함께 내려갑니다. 도로에서 신애의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춰버리고 카센터 주인인 종찬을 만나게 됩니다. 신애는 카센터 옆쪽으로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열게 되어 카센터로 개업인사를 갑니다. 종찬은 신애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신애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어느 날신애는 외출에서 돌아왔는데 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을 납치한 유괴범에게서 전화를 받습니다. 급한 마음에 신애는  늦은 밤이었지만 종찬에게 달려갑니다. 그렇지만 종찬은 즐겁게 노래를 하는 모습이 보여 자신의 마음과 대비대는 모습에 발길을 돌립니다. 신애는 유괴범이 요구한 돈을 찾아 유괴범이 지정한 장소에 돈을 가져다 놓습니다. 경찰이 찾아오고 경찰과 같이 간 곳에는 싸늘한 주검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납치하고 죽인 범인은 다름 아닌 웅변학원 원장이었습니다.신애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며 주위에서 교회에 다녀보라는 권유를 받게 됩니다.그렇지만 전혀 관심이 없던 신애가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준이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가 길거리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교회에 나가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어색하고 불안했지만 신애는 그곳에서 대성통곡을 하게 됩니다. 신애는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며 신앙을 키웁니다. 신앙이 깊어지면서 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해 주기로 결심을 합니다. 나한테 너무 큰 고통 남겨준 사람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 주려고 하셨다며 용서해주기로 합니다. 그렇게 신애는 감옥에 있는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갑니다. 범인과 마주한 신애는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려 왔다고 말합니다. 범인은 신애에게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어 정말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범인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사죄하고 하나님은 죄 많은 본인을 용서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애의 물음, 용서는 누가 하나요?



그 말을 들은 신애의 표정은 혼란스럽습니다.범인을 면회한 후 신애는 심한 마음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급기야 쓰러지게 됩니다. 교회에 찾아가 울분을 토합니다. 목사님이 집으로 찾아와 기도를 하는 중에 신애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가 있냐며 왜냐며 울부짖습니다. 왜 그리고 신애는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장로에게 드라이브를 시켜달라고 하며 본인을 망가뜨리려 합니다. 그런 신애에게 종찬은 정신을 차리라며 화를 냅니다. 하나님에 향해 싸우고 원망하고 잘 지켜보라며, 절대 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결국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치료가 다 끝나 퇴원을 하게 됩니다. 퇴원을 한 날 머리부터 다듬어야겠다는 신애를 종찬은 미용실로 데리고 갑니다. 근데 미용사는 다름 아닌 웅변학원 원장의 딸이었습니다. 범인의 딸은 자꾸 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자르다 말고 신애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와서 자르다 만 머리를 손질을 하려 합니다. 종찬이 그 거울을 들어 신애를 비춰줍니다.

 

 

마지막 장면의 의미

 

밀양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어느 날 신애가 스스로의 머리를 자르는데 종찬이 거울을 들어 비춰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거울 속 신애의 얼굴에는 햇빛에 가득 들어옵니다. 영화 초반에 신애는 밀양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 비밀의 햇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종찬에게 말합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영화 제목은 시크릿 선샤인입니다.영화 밀양에서 종찬이라는 인물은 항상 신애의 곁을 햇볕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찬이 들고 있는 거울을 통한 신애의 얼굴 위의 햇살은 감독이 이 영화의 의미를 담아 연출한듯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기독교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모함이라고도 하지만 반대로 기독교인들도 올바른 신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영화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존재한다고 믿는 신보다는 항상 나의 곁에 있는 사람, 말없이 신애의 거울을 들어주는 종찬같은 사람이야말로 신애가 정말 필요했던 구원과 치유가 아니었을까요?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